2024. 11. 19. 14:02ㆍArticle
남프랑스의 작은 고대 로마 도시 아를. 고흐가 다작을 남긴 도시로도 유명한 이곳에서는 1970년부터 지금까지 여름마다 사진 축제가 열리고 있다.
2024년, 55회를 기록한 이 행사는 세계에서 가장 처음 열렸던 사진 축제로, 매년 7월 첫주부터 9월 말까지, 3개월간 아를의 도시 중심가에서 이루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 사진축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전 세계 사진인들이 매 해 여름마다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되었다.
사진제가 문을 여는 7월 첫 주의 아를은 축제의 오픈 행사, 전시 해설, 포트폴리오 리뷰, 포토 북 페스티벌 등 다양한 부대행사 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이를 위해 도시에 방문하는 수 많은 전문가와 그들을 만나고자 하는 사진가들, 그리고 전시 관람객까지 ‘사진인’으로 가득차게 되는 이곳은 뜨거운 남프랑스의 햇살만큼 활기가 넘친다.
2024 Église des Frères Prêcheurs, Cristina de Middel
나는 2023년과 2024년,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아를에 방문하였다.
2023년에는 대학원에 재학하며 사진 전시 및 페스티벌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아를 사진 축제가 끝나기 직전인 9월 충동적이고 짧은 여행을 떠났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몸으로 부딪친 아를 사진 축제는 사진을 전공하고 사진 전시 분야에 종사하기 시작한 나에게 환상처럼 다가왔고, 전시를 둘러보며 받은 신선한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처음 마주한 아를 사진 축제의 규모는 거대했으며, 지역의 건축물과 어우러지는 전시 전경은 황홀하고 새로운 시각의 확장이었다.
아를의 전시를 다녀온 이후, 부산 국제 사진제와 대구사진비엔날레 등 국내 사진 축제에 깊은 흥미를 가지게 된 나는 관련 업계에 취직을 했고, 2024년 7월 업무와 여행을 병행하며 다시 한 번 아를에 다녀왔다. 단 9개월 만에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전혀 다른 시기에 방문한 아를은 새로우면서도 동시에 익숙한, 또 다른 감상을 자아냈다.
1. 남프랑스의 아를
현재보다 고대 로마 시대에 번영했던 도시인 아를은 과거 알프스에서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론강을 끼고 매우 큰 규모로 발전하였으며, 1981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고흐가 다작을 남긴 도시로도 유명한데, 규모가 크지 않아 한 바퀴를 다 둘러보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만큼, 하루 혹은 반나절 투어로 고대 로마의 유적인 원형 경기장과 고흐의 작품 속 풍경들을 바라보기 위해 남프랑스 여행 중 잠시 거쳐가는 관광객이 많은 것 같다.
인근에는 프랑스 3대 도시 중 하나인 마르세유와 교황청이 있는 아비뇽, 옛 프로방스 공국의 수도인 엑상프로방스까지 각각 다른 분위기의 도시들이 있기에 남프랑스를 여행한다면 인근 도시들도 아를과 함께 둘러볼 만하다.
한국에서 아를로 가는 방법은 대표적인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파리 CDG 공항으로 입국하여 고속철도 TGV를 이용하는 방법과, 마르세유의 국제공항 MRS로 입국하여 우리나라의 무궁화호와 유사한 TER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아를역에 정차하는 TGV가 많지 않아 어디에서 출발하더라도 TER을 한번은 이용하게 된다.
CDG 공항을 이용한다면, 프랑스를 여행하는 김에 겸사겸사 파리를 둘러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파리에서 아를까지는 TGV로 3시간 30분 가량이 소요된다. MRS 공항을 이용한다면 인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직항은 없지만, 공항에서 아를까지 TER로 40분 가량이 소요되기 때문에 기차 이동 시간이 짧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각각 2023년과 2024년에 두가지 방법을 다 이용해 보았는데, 파리에서 시간을 보낼 계획이 없고, 직항을 굳이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면 마르세유를 통해 이동하는 방법이 비행에 이은 기차 탑승을 최소화 할 수 있기에 아를 사진 축제를 목적으로 한 방문에는 조금 더 편리하다고 생각한다.
Starry Night Over the Rhône, 1888 / Panorama du rivage 2023
The Asylum Garden at Arles, 1889 / L'espace Van Gogh 2023
빈센트 반 고흐가 300여점의 작품을 그린 도시도로 유명한 아를. 도심을 골목골목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그의 작품 속 장소들을 마주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장소는 ‘고흐 정신병원’으로 유명한 L’espace Van Gogh. 그가 귀를 자른 후 입원했다고 알려진 장소로 지금은 건물 1층의 카페에서 아담하지만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며 한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2.아를 사진 축제
아를 사진 축제는 도시의 중심가 전체를 활용하여 3개월간 전시를 진행한다. 2024년 총 26개의 전시장이 구성되어 있었는데, 지도 속 각 숫자는 전시장의 고유번호를 의미하고, 전시장은 각각 다른 전시들로 채워져 있다.
[Arles 2024] 어플을 다운받으면 지도에서 전시장 위치와 전시 내용을 한번에 확인할 수 있고, 로그인 후 어플에서 티켓을 구매하면 현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종이티켓보다 저렴하고 편리하다. 현장 구매와 €2 정도 차이가 있고, 모바일로 티켓을 저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티켓은 홈페이지에서도 구매 후 다운로드 할 수 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를은 매우 작은 규모의 도시이며, 전시는 도심의 가장 중심가에서 이루어진다. 각 전시장과 전시장 사이는 가장 짧은 동선을 기준으로 5분 정도이며, 조금 떨어진 전시장을 방문하더라도 걸어서 15분에서 20분 정도면 충분히 닿을 수 있다. 고대 로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아를을 골목골목 둘러보다 보면 사진 축제의 전시장이 계속해서 튀어나온다. 그만큼 아를 사진 축제는 전통적인 “화이트 월”의 갤러리가 아니더라도 오래된 성당, 박물관, 창고, 유적지 등 도시의 모든 공간을 활용해서 사진 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그 중 특히 아를 시청 건물 지하에 위치한 전시장 Cryptoportiques - access stairs는 특별한 감상을 자아낸다.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드넓은 지하공간이 펼쳐지고, 어두운 공간의 특성을 살린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2024년 Sophie Calle의 작품이, 2023년 Juliette Agnel의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내가 아를 사진 축제에 처음 방문했던 2023년부터 전시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신선함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오랜 기간 유지된 축제인 만큼,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이야말로 그 비결이 아닐까?
2024 Cryptoportiques - access stairs, Sophie Calle
2024년, 일주일간 아를에 머물렀던 나는 포트폴리오 리뷰 행사의 통역을 맡았었기 때문에 매일 오전과 오후에 전시장과 리뷰장을 오가야 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멀리 위치한 전시장까지 이동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결국 2개의 전시장에는 미처 가보지 못하고 총 24개의 전시를 관람하였는데, 이렇게 많은 사진 전시들을 지겨울 때까지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아를 사진 축제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를 사진 축제는 전시의 개수가 많은 만큼, 오리지널 젤라틴 실버 프린트 작품부터, 사운드와 디지털 이미지를 결합한 작품 등 현대적인 형태의 작품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사의 중심이 되는 서양문화권에서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사진을 처음 공부할 때 알게된 작가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 2018년 미국 워싱턴 DC의 현대미술관에서 아무 생각 없이 전시를 관람하던 중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3등선실 원작을 마주한 적이 있다. 머릿속이 하얗게 날아가고 반가움보다 당황스러움이 크게 남을 정도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대작을 마주하는 경험은 무척이나 오랫동안 가슴 속 깊은 곳에 남는다.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전시 하나만 생각하고 떠났던 지난 2023년 아를 사진 축제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다이안 아버스의 작품들을 만났다 (물론 전시와 작품에 대한 조사를 하고 떠났다면 충분히 예상 할 수 있었겠지만).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사진 축제의 지도를 따라 간 전시장에서 만난 다이안 아버스의 오리지널 프린트와, 감동적인 디스플레이 방식은 아를 사진 축제에 대한 깊은 감상을 남겼고 나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2023 LUMA, Diane Arbus
일주일간 아를에 머물며 사진 축제를 감상하더라도, 방대한 양의 작품들을 한장 한장 여유있게 감상하기에 시간은 부족하기만 했다. 다양한 작품을 색다른 공간에서 마주할 수 있는 아를 사진 축제가 내년에는 어떤 공간에서 어떤 작품을 어떻게 소개할지 기대된다.
3.부대행사
3개월씩 하는 전시에 왜 굳이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몰리고,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비싸지는 7월 첫 주에 방문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포트폴리오 리뷰, 포토 북 페어 (Arles Books Fair with France Photobook), 큐레이터와 함께하는 전시장 투어, 작가의 작품 프레젠테이션, 그리고 비공식 전시 OFF 등 아주 다양한 부대행사 프로그램에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 중 특히 포트폴리오 리뷰와 포토 북 페어, OFF는 특별하고 규모 있는 행사이다.
아를 사진 축제가 시작하는 7월 첫 주 5일간 운영되는 포트폴리오 리뷰는 전 세계의 큐레이터, 작가, 출판계 인사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행사이다. 매년 6월경 아를 사진 축제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받으며, 수 많은 리뷰어의 리스트 중 본인이 선호하는 분야와 국가 등을 고려해 작품을 소개하고 싶은 대상을 선정, 리뷰를 신청할 수 있으며, 1번의 리뷰 마다 20분 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유능한 사진인들에게 직접 작품을 소개하고, 네트워킹을 통해 전시, 출판, 프로젝트 등의 다양한 기회로 이어질 수 있는 포트폴리오 리뷰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국제적인 시각이 교차하는 장으로, 더 넓은 시장을 경험하고자 하는 사진인들에게 꼭 필요한 경험으로 자리 잡고 있다.
포토 북 페어는 아를 사진 축제를 대표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독립 출판물과 사진,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이다. 다양한 사진작가와 출판사들이 모여 서로의 작업을 선보이는 이 행사는, 북 페어와 더미 북 페어로 나눠진다. 북페어에는 저명한 출판사들이 제작한 사진 책을 직접 소개하는 자리이며, 현장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구매할 수 있다. 더미 북 페어는 작가와 출판사들이 작품을 정식 출판이 아닌 샘플, 혹은 단일 권의 형태로 제작하고 선보이는 자리로 규격화되지 않은 신선한 형식의 사진 책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을 찍고, 작품을 발표하고, 전시를 이어가고, 온라인으로 소개하는 것을 넘어 한 권의 책으로 작품을 정리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다. 포토 북 페어와 더미 북 페어를 통해 다양한 사진책을 감상하고, 가볍게 챙겨간 캐리어를 의미있는 책들로 가득 채워올 수 있기에 기왕 아를에 방문한다면 포토 북 페어를 함께 둘러보기를 바란다.
아를 사진 축제와는 별도로 운영되는 전시 OFF는 신진 작가와 실험적인 프로젝트가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이다. 개인과 갤러리가 직접 운영하는 전시들이 도심 곳곳에서 펼쳐지며, 2024년에는 약 86개의 전시가 이루어졌다. 아를 사진 축제 기간동안 크고 작은 갤러리, 카페, 식당 등에서 열리기 때문에 아를 사진 축제를 관람하며 도심을 걸어 다니다 보면, 수많은 OFF 전시들을 마주할 수 있고, 무료로 입장하기에 아를을 구경하다 전시장이 보이면 가볍게 둘러보기 좋다. 전 세계에서 본인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은 작가들이 직접 모여 구성하는 전시인 만큼 신선하고 다양한 시각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는 작가 혹은 관계자가 상시로 자리하기 때문에 편안하고 즉흥적인 교류를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사진 축제의 일환도, OFF도 아닌 별도의 갤러리 전시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가 문을 열고, 각종 행사가 즐비하는 아를의 여름, 전 세계 사진가들이 한곳에 모인다. 홀로 떠나 마주한 2023년 가을의 아를은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차분히 알려주었고, 업무를 병행하며 떠났던 2024년 여름의 아를은 한 자리에 모인 전세계 사진인들의 열정을 뜨겁게 알려주었다. 여행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국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진인에게는 성지순례와 같은” 아를 사진 축제 Arles, Les Rencontres De La Photography는 취미부터 생업, 관심사까지 사진과 전시로 둘러쌓여 스스로를 ‘사진인’이라 생각하게 된 나에게 대단히 큰 영향을 끼쳤고, 깊은 의미를 남겼다. 도심을 둘러싼 수 많은 사진전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비교적 한국과 가까운 교토, 싱가포르, 중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상적인 공간을 신선한 작품과 결합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다양한 사진 축제를 당신도 경험하기를 바란다.
글 / 사진 조이수
자료 이미지
https://www.rencontres-arles.com/en
https://www.vincentvangog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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