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9. 14:15ㆍArticle
‘6. 진로희망사항: 유치원교사’ 내 생활기록부에 적힌 진로 희망이다. 7살 차이 나는 사촌 동생과 같은 동네에 살았던 탓에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는 걸 좋아했고 중학생 때부터 내 꿈은 유치원 교사였다. 실제로 유아교육과에 진학까지 했었다. 그런 내가 어쩌다가 사진을 시작했을까?
내가 사진을 시작한 계기는 엄청 뜬금없다. 대학교 개강을 앞두고 서울을 다녀왔는데 기차에서 창문을 보며 멍때리고 있었다. 기차는 울산역을 지나갔고 그 순간 ‘사진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학과가 있는지도 몰랐고 6년동안 유치원 교사를 희망하던 내가 개강을 앞두고 갑자기!
사진이랑 아예 연관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남들보다 조금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반수 중 모교에 수험표를 받으러 갔을 때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마주쳤다. 버스에서 서로 어떤 과를 희망하는지 대화를 나눴다. 사진학과를 말하니 친구들의 답변이 뜻밖이었다. ‘맞아, 너 사진 찍는 거 좋아했었잖아.’ 그간 나는 사진에 전혀 관심도 흥미도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 눈엔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나 보다. 뜬금없이 사진학과를 얘기했는데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내가 처음 산 카메라는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을 앞두고 산 인스탁스 미니였다. 칠칠 맞았던 나는 가방을 열고 다니다가 에버랜드에서 카메라를 떨어뜨렸고 건전지에서 액체 같은 게 나오길래 더 못 찍고 무서워서 봉인해 뒀다.
그다음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필름 카메라 유행을 따라 당근마켓에서 산 5만원 짜리 미놀타 7s였다. 사실은 그땐 찍히는 걸 더 좋아했던 지라 같이 놀러 간 친구가 카메라로 나를 찍어줬다.
고등학교 3학년 졸업사진 찍는 날, 초6 때 산 인스탁스 미니를 오랜만에 꺼내 들었다. 필름 100장을 주문해 친구들을 찍었다. 언젠가 동창회를 한다면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서 찍은 사진은 내가 가졌다.
2020년 8월 11일, 몇 주간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했을 친구들이 예쁘게 화장한다. 유행 중인 하이틴룩, 애니메이션 코스프레, 디즈니 공주, 깡패 등등 컨셉도 가지각색이다. 겉옷만 걸쳐도 혼나는 학교에서 사복이 허용되는 날. 졸업사진 촬영 날이다. 초등학생 때 산 인스탁스 미니로 열심히 고민한 친구들을 찍는다. 작년, 재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도 마주치는 족족 예쁘게 담는다. 야자 시간에 화장한 게 아까워 지우지 않는 친구들을 또 찍는다. 즐거운 기억이다. 야간자율학습 시작 전 우리를 야자팸이라 부르며 교탁에서 사진을 찍고, 토요일 자습에도 모여 사진을 찍었다. 나도 즐겁고 친구들도 즐거워하고 그때의 즐거움이 사진에 남아있고..
카메라가 신기하고 재밌어 보여서 샀고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 찍었다. 대부분의 친구가 여행 갔을 땐 사진을 많이 찍었고 나도 그랬을 뿐이다. 그래서 사진에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핸드폰이 아닌 카메라를 구입해서 사진을 찍은 친구들은 소수였다. 그중엔 나도 있었고, 진즉에 사진에 흥미가 있던 거였다. (아, 그렇다고 유치원 교사의 꿈이 거짓이었던 건 아니다.)
‘사진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고 난 후 5월경 사진 학원을 등록했다. 사진학과에 등록하기 전까지 후회하지 않을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입시 후반부엔 유아교육과에 복학 해야겠다고 생각해 면접 두 개는 아예 보러 가지 않았다. 복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가 고등학생 때 친구들 찍어주던 게 생각나서 결국 사진학과에 등록했다. 그 기억이 너무 좋아서 사진을 하게 된 것 같다.
뜬금없이 유치원 교사가 꿈이다가 사진을 시작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적다 보니 뜬금없진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유아교육과를 자퇴하고 후회도 많이 했다. 유아교육과를 가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면접을 준비하고, 처음 합격 소식이 나왔을 때의 기쁜 감정은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하지만 사진은 내가 다가갈수록 재밌어지는 것 같다.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사진에 대한 열의를 더더더!! 불태워야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무섭기로 유명했던 선생님이 말했었다. ‘대학교를 가면 그 관련 학과로 취업할 것이고 그대로 계속 그 일을 하며 살게 된다. 지금 너희의 3년이 평생을 결정하게 된다.’ 그때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내 평생을 결정짓는다는 게 무서워 왠지 소름도 돋았었다.
선생님이 보기에는 틀어진 삶을 살고 있다. 그때의 3년과 지금 나는 전혀 다른 걸 하고 있다. 사진학과에 들어와서도 내 진로 희망은 바뀌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내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이들지 않게 열심히 할 수 있다면, 몇 번이고 바뀌어도 좋다.
Bravo My Life!
글 / 사진 백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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